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5.16 사건 (문단 편집) === 중앙문화혁명소조의 구성 === 일찍이 마오쩌둥은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새로운 소조를 만들 것을 요구하며 분노를 토한 바가 있었다. >"수정주의가 문화 부문은 물론이고 당과 정부, 군대까지 파고들었다. 수정주의는 특히 당과 군대에 만연해있다." 마침내 5월 16일 정치국 확대회의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명의로 문화혁명 5인 소조를 해산하고 정치국 상임위원회 산하에 중앙문혁소조를 구성한다는 특별 통지문을 채택했다. ||당과 정부, 군대, 산업계에 잠입한 자산 계급의 대표 인물들은 반혁명, 수정주의 분자들이다. 일단 시기가 성숙되면 정권을 탈취하여 무산 계급 전정을 자산 계급 전정으로 바꿀 것이다. 이런 인물들 가운데 우리는 이미 우리에게 간파되었고, 일부는 아직 간파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여전히 우리의 신임을 얻고 있으며, 예를 들어 흐루쇼프 같은 인물처럼 우리의 후계자로 길러지고 있다. 그들은 현재 우리 곁에서 잠자고 있다. 각급 당 간부들은 이 점을 각별하게 주의해야 할 것이다.|| 마오쩌둥의 비서이자 대필작가 출신 [[천보다]]가 소조장을 맡아 부소장 [[장칭]], 고문 [[캉성]], [[야오원위안]], [[장춘차오]]와 함께 문화대혁명을 지도하게 되었다. 5월 18일 린뱌오가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문화대혁명 보고서를 발표하며 류사오치에 대한 은유적인 비판을 가했다. 1966년 5월 23일, 펑전, 루딩이, 뤄루이칭, 양상쿤을 포함한 4명이 국민당의 스파이라는 이유로 해임되었고 저우언라이는 그것이 마오쩌둥 사상의 승리라고 극찬했다. >"마오 주석은 레닌처럼 타고난 지도자이다. 그는 세계 모든 인민의 지도자다!" 이어 5월 25일 베이징대학 철학과 당서기 녜위안쯔가 여섯명의 학생들과 함께 부르주아 세력이 베이징 대학을 장악했다는 대자보를 붙혔고 대학 수뇌부를 흐루쇼프 수정주의자들로 몰아붙혔다. 6월 1일 중앙문화혁명소조가 첫번째 논설을 인민일보에 발표, "모든 괴물과 악마를 척결하라!"라고 선동했다. 이날 마오쩌둥은 항저우에 머물다가 녜위안쯔의 대자보의 복사본을 받아보고 "최초의 마르크스-레닌주의 대자보"라고 격찬하며 대중매체에 유포할 것을 지시했다. 이어 "캉성, 보다 동지에게. 이 글을 신화사를 통해 전문을 방송하고 전국 신문에 발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베이징 대학이라는 반동의 보루에 대한 타도 작업이 여기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라고 교시했고 2시간 후에 "대자보는 1960년대 베이징 공사의 선언이며 파리 코뮌보다 의미심장하다."라고 추가로 교시했다. 이어 베이징 주둔군이 마오쩌둥의 지시로 2개 사단으로 증강되었으며 린뱌오가 홍위병들에게 맞서지 말라고 지시하여 정치국 위원들을 경악하게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